“총리가 누가 되건 파친코는 돌아간다”
▣ 도쿄=황자혜 전문위원 jahyeh@hanmail.net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한창 ‘바다이야기’ 판에 웬 섬 이야기? 10명 안팎의 사람들이 양쪽에서 화면을 마주하고 앉는 ‘파친코다이’를, 일본에서는 일명 ‘시마(섬)’라 부른다. 그러니 사람과 사람 사이에 파친코다이(시마)가 있고 많은 사람들이 몇 시간 또는 하루 종일 섬 앞에 앉아 수만엔에서 수십만엔을 쓰며, 내일이면 다시 그 섬에 가고 싶어하고, 실제로 간다.
국민오락, 최근엔 중·노년층도 파고들어
일본에서 카지노는 불법인 반면, 경마·경륜은 합법적인 도박으로 자리잡았다. 그보다도 더 전국적으로 어디에나 있는 파친코는 어른들의 유희장, 성인 놀이터다. 경찰과 상위 조직 등이 허가 감찰하고 기계 한 대 바꿀 때마다 신고해야 하지만, 보통 역전의 ‘이자카야’(술집) 정도의 개념으로, 열차와 전철이 발달한 일본의 역세권에는 파친코들이 어김없이 있다.
△ ‘파친코 섬’은 일본의 국민 오락으로 전국 어디에나 떠 있다. 젊은 여성들도 개의치 않고 즐긴다.(사진/ REUTERS/ NEWSIS/ YURIKO NAKAO) |
전국 1만5천 개 이상의 점포와 1800만여 명의 파친코 이용자가 있다. 파친코 이용자의 30% 정도가 “파친코 중독증이 있다”고 스스로 말한다고 한다. 파친코 중독증을 취재한 적 있는 <아카하타일요판>의 히라가와 기자는 “중독 증세를 자각하는 사람이 30%라면 그보다 더 많은 수가 중독증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중증 중독자는 중독 사실을 부인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지난 5월 젊은 부부가 젖먹이를 차 안에 방치한 상태에서 파친코에 열중하다 아기가 사망한 사건이 매스컴을 달궜다. 파친코에 중독된 아들을 꾸중하는 어머니를 아들이 살해한 충격적인 사건도 있었다.
그러나 사건은 미디어에 떴다 사라져도, 파친코 섬은 여전히 일본의 국민오락으로 전국 어디서나 떠 있는 게 현실이다. 왜냐하면 영업에 지친 샐러리맨이나 슬리퍼 신고 얼마 안 되는 용돈으로 길게 시간 때우러 가는 동네 아저씨들이 변함없는 파친코 고객이기 때문이다. 또 최근의 파친코 풍경에는 중·노년 여성도 눈에 띈다. 그들이 좋아하는 국민가수 ‘미소라 히바리(한국으로 치면 ‘이미자’에 해당) 다이’는 물론이고, 한류에 열광한 중·노년층을 겨냥한 ‘후유 소나타(겨울연가) 다이’가 그것을 증명한다. 젊은 여성들도 개의치 않고 들어가는 분위기다. 출근길 역전 파친코 점포 앞에 늘어선 술이 덜 깬 ‘프리터’(프리랜서와 아르바이트의 합성어로 정직이 아닌 임시직으로 살아가는 젊은이들)들과, 대박을 노리는 사람들의 행렬은 파친코점 ‘자리쟁탈전’을 위해 점거 농성하듯 길게 서 있다.
‘파친코 왕국’이라 불리는 일본의 파친코 역사는 전쟁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파친코의 ‘황금시대’라 불렸던 때는 태평양전쟁 패망 뒤인 1953년이다. 전국에 3만8764개 점포가 생겨나 연간 매출 20조엔(200조원)을 구가하던 시절이었다. 그때에 비하면 불황이라고 하지만, 파친코는 여전히 일본 자동차 산업에 맞서거나 앞서는 대표적인 산업으로 뿌리내린 반세기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 ‘자이니치’(재일 한국인과 조선인)의 존재가 있다. 전체 파친코 점포 경영자의 비율을 보면, 20년 전과 크게 변하지는 않았다. 대략 자이니치 6할, 일본계 3할, 대만계 1할이다. 이러한 6-3-1 비율은 일반인도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파친코 하면 자이니치’라는 것이 일본의 일반적 인식이다.
한국에서 경영하려다 실패하고 오기도
자이니치 2세로, 일본의 파친코 관련 업계 ‘도요라인 오토메이션 (주)니찌에이 사프라이’ 대표인 리영수(54)씨를 만난 건, 그가 귀가해 즐겨보는 우선 일본에서는 대규모의 파친코점을 열고도 파친코다이 사이사이를 카운터에서 조망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허가가 취소되기도 한다. 단속하기 어렵다는 이유다. 또 파친코 업계에서는 일명 ‘주사 놓는다’고 하는데, 손님이 단 몇 초 내 기계를 뜯어 엄청난 액수가 터지게 조작할 수 있다. ‘주사’의 범인이 손님이라 해도 ‘주사’ 장치가 단 한 대에서라도 발견되면, 대상 파친코점은 물론 그 주인의 다른 몇십 개 체인점까지 모두 영업정지가 된다. 손해는 몇백억엔 규모에 이른다. ‘주사’를 놨는지 아닌지도 구분 못하고, 또 그만큼 사행성이 높은 한국의 ‘바다이야기’를 화제로 삼다가, 갑자기 리 대표가 웃으면서 말을 잇는다.
“일본에서는 총리가 누가 되건, 파친코 업계는 돌아갑니다. 경찰이 관여하고 법이 분명하니까 법 테두리 안에서 우리는 합법적인 사업을 하는 거죠. 그런데 경찰이니 법이니 하면 무섭기라도 하지, 아니 한국에 문화관광부를 무서워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습니까?”
일본은 전체적으로 파친코 인구가 감소하는 추세다. 내년 가을께면 도박성이 높은 ‘슬롯4호기’는 철거 운명에 놓이고 도박성이 상대적으로 약한 ‘슬롯5호기’가 남겨지게 되어 문 닫는 점포도 생겨날 전망이다. 아울러 점포 간 경쟁도 치열하다. 300대 이하의 점포가 500~1천 대의 대형 점포에 밀려 문을 닫거나 흡수합병되는 약육강식 자본주의 논리는 특수업인 파친코 업계라고 피해가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파친코 관련 사업에 종사하는 일본 속의 자이니치가 한국에 눈을 돌리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그러니 규모 면에서는 ‘바다이야기’ 사건이 일본에 뉴스가 될 만하지 않아도, 자이니치에게는 하나의 ‘불안 요소’이기도 하다.
△ 일본에서 파친코업을 경영하는 자이니치 2세 이용수씨. 한국은 일본이 거친 모든 과정을 고스란히 밟고 있다고 말한다.
자이니치 중에는 현재 한국에서 경영을 하거나, 벌써 실패해서 보따리 싸고 돌아온 사람도 있다. 5년 전부터 지금껏 8번에 걸쳐 한국을 왕래하면서 직접 바다이야기도 해보고, 한국의 분위기도 감지했다는 리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일본에는 나름대로 파친코 업계의 ‘질서’라는 게 있어요. 한국은 이제 등록제니 허가제니 하고 있어 파친코 관련 산업을 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불안하죠. 또 일본 것은 시시해서 재미없다는 한국인도 많습니다. 200만~300만원대로 가는 ‘바다이야기’의 높은 도박성도 문제고요.”
일본 건 시시해서 재미없다는 한국인
파친코 경영자의 연수입이 어느 정도 되냐는 질문에 한국 중산층의 수입이 어느 정도 되냐고 되물어왔다. “연봉이 한 5천만원 된다고요? 그렇담, 파친코 오너는 한국으로 치면 중산층의 중산층이겠군.” 6, 7년 전 기준으로 일본의 파친코 경영자는 1년에 2천~3천만엔에서 많으면 1억~2억엔 정도를 번다고 한다. 기업으로서는 자동차수리 체인점 몇 개 가진 사람보다 낫지만, 사회적 인식은 그에 훨씬 못 미친다. 자이니치 2, 3세는 돈과 경제력이 일본이라는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중요한지를 몸으로 체험한 사람들이다. 물론 돈이 다가 아니라는 것도, 돈벌이를 위해 자녀한테 사업을 물리겠다는 마음도 없다. 다만 “대한민국의 대통령도, 공화국 총비서도, 일본국 총리도 될 수 없는” 일본 사회의 자이니치에게 어느 정도 안정된 생활과 자녀 교육을 위해서 ‘경영·영업·설비·관리·환전’을 통털어 ‘파친코 산업’은 동포 사회가 뭉치는 생명선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망언 덕에 유명한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는 수시로 자이니치를 괴롭힌다. 총련 본부 등에 부과된 면제 혜택을 금지하는 법을 만들고, 은행들은 총련계라는 이유로 대출을 거부한다. 이러한 자이니치에게 가해지는 직접적인 압력에 대해서 이야기하던 리 대표는 “오늘 저녁 뉴스에서는 ‘바다이야기’ 좀 그만하고 제대로 된 ‘국군통수권 이야기’ 좀 듣고 싶다”며 씁쓸하게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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