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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야기

일본 원자력발전소

by 인생의꽃 2011. 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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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그래도 원자력’ 하는 이유


8월 현재 일본은 5개월 전 일어난 후쿠시마(福島) 제1원전발전본부(이하 후쿠시마 1발)의 사고 후유증을 단단히 앓고 있었다. 일본 신문은 기상도를 싣듯이 일본 각지에서 측정한 ‘최대 방사선량 지도’를 게재한다. 이 지도는 문부과학성이 측정한 전날의 지역별 방사선량과 평상시 그곳에서 측정되던 자연방사선량을 표시한다.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로 1만5719명이 사망했다. 쓰나미에 휩쓸려 간 것으로 보이는 행방불명자 4616명을 포함하면 총 희생자는 2만335명에 이른다. 사망자 가운데 일부는 신원 확인을 못했다. 신원을 확인하려면 이들의 DNA와 행방불명자를 신고한 가족의 DNA를 채취해 비교해야 한다. 일대일 비교라는 고단한 수작업 끝에 신원을 밝혀내면, 일본 신문은 그 명단을 공개한다.

후쿠시마 1발이 사고를 당한 가장 큰 이유는 낮은 지대에 원자력발전소(이하 원전)를 지은 데 있다. 후쿠시마 1발을 운영하는 도쿄(東京)전력은 그 지역에서 일어날 수 있는 쓰나미의 최고 높이를 5.7m로 상정하고, 해발 10m에 원전을 지었다. 그런데 15m 높이의 쓰나미가 몰려왔다.

지하실에 비상발전기 2대나 배치

원전 건물은 비행기가 떨어져도 깨지지 않을 정도로 단단하게 짓기에 쓰나미에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문제는 방수(防水)와 설계였다. 특급 보안시설인 원자로 건물과 터빈 건물은 사람이나 동물의 은밀한 출입을 막으려고 한 뼘 두께의 육중한 철문을 닫아놓는다. 하지만 5m 두께로 원전 지대를 덮은 바닷물은 문틈으로 얼마든지 스며들 수 있었다. 압축공기를 넣어 팽창시킨 고무 패킹으로 빈틈을 막는 수밀(水密) 시설만 해놓았어도 후쿠시마 1발은 사고를 피할 수 있었다.

비행 중인 여객기의 기장과 부기장은 절대로 같은 음식을 먹지 않는다. 똑같이 상한 음식을 먹어 모두 쓰러지는 것을 피하려는 차원이다. 기장이 쇠고기요리를 먹으면 부기장은 생선요리를 먹는 식이다. 도쿄전력은 1대면 충분한 비상발전기를 2대나 배치했다. 그런데 위치만 좌우로 대칭시켜 똑같이 지하실에 넣어놓았다. 이 때문에 문틈으로 들어간 바닷물에 똑같이 침수됐다. 기장과 부기장이 똑같은 요리를 먹고 식중독으로 쓰러진 사태를 만든 것이다. 도쿄전력은 후쿠시마 1발에 16대의 비상발전기를 배치했으나 모두 지하에 설치했기에 전부 침수됐다.

미국 ‘뉴욕타임스’의 관련 보도에 따르면, 일본 해안 마을에는 “이렇게 큰 쓰나미가 몰려왔으니 이 밑으로는 절대 집을 짓지 마라”며 조상이 후손에게 경고한 비석이 수백 개나 서 있다고 한다. 그중에는 600년 된 것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일본 원전 설계자들은 100년밖에 되지 않은 일본 기상청 통계자료에만 의존해 원전을 설계함으로써 화(禍)를 피하지 못했다.

비상발전기가 침수됐더라도 외부 전원이 살아 있으면 사고가 나지 않는다. 원전은 원자로에서 끓는 물로 증기를 만들고, 증기로 터빈을 돌려 발전한다. 그리고 터빈을 돌렸던 증기를 식혀 물로 만든 뒤 다시 원자로로 보낸다. 따라서 물과 증기를 돌리려고 곳곳에 펌프를 설치한다. 이 펌프를 가동하기 위해 외부로부터 전기(외부 전원)를 공급받는다. 원전이 사용하는 전기량은 많다. 그래서 원전 주변에 변전소를 설치하고 철탑으로 고압선을 연결한다. 고압전기가 흐르는 철탑과 변전소에는 누전 사고를 막으려고 두 시설이 흔들리면 자동으로 전기를 차단하는 시스템을 설치해놓았다. 대지진이 일어난 순간 후쿠시마 1발과 연결된 6개 변전소가 흔들리면서 차단 시스템이 작동했다. 원전 전체에 전기가 차단된 것이다.

전문가들이 문제가 생긴 곳을 찾아내 복구하고 정상적으로 전기를 흐르게 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동안 배터리만으로 간신히 펌프를 돌리던 후쿠시마 1발은 배터리가 방전되자 4개의 원전 건물이 폭발하는 전대미문의 사고를 당했다. 원전만 강한 지진에 견디게 짓고 철탑과 변전소는 그렇게 짓지 못한 것이 엄청난 사고를 가져온 것이다.

안보와 방재(防災)를 담당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을 상상하라’는 뜻으로 ‘Imagine the unimaginable’이라는 말이 회자된다. 후쿠시마 1발 설계자들이 좀 더 상상력을 발휘해 설계했다면 사고는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일본은 경제산업성 산하의 ‘원자력 안전보안원(安全保安院)’이 원자력 안전문제를 다뤄왔다. 경제산업성은 원전 진흥업무를 담당한다. 상급기관인 경제산업성은 가속기를 밟는데, 하급기관인 원자력 안전보안원은 제동기를 밟는 구도인 것이다. 이런 구도에서는 원자력 안전문제가 소홀해질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일본은 원자력 안전보안원을 내각부의‘원자력안전위원회’와 합쳐 환경성 외청으로 ‘원자력안전청’을 두기로 했다. 대등한 기구인 경제산업성과 환경성이 진흥과 안전을 나눠 맡아야 원자력산업이 견제 및 균형을 기반으로 안전하게 정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인정한 것이다.

후쿠시마 1발 사고를 계기로 일본 자치단체들은 모든 원전에 대한 안전성 검사에 들어갔다. 검사를 하려면 원전 가동을 중단해야 한다. 후쿠시마 1발 사고로 4기의 원전이 폭발한 데 이어, 안전 검사와 정기 점검을 위해 원전을 줄줄이 세우다 보니 총 54기의 일본 원전 가운데 12기만 가동한 시점도 있었다. 세계 2위의 원전 국가 일본에서 원전 가동률이 22%로 떨어졌으니 이들의 전력 부족은 심각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 ‘산케이’ 신문에 실린 지역별 최대 방사선량 지도와 신원을 확인한 사망자 명단. 일본 언론은 쓰나미 피해를 요란하게 보도하지 않는 게 특징이다.


도쿄전력 미래 더욱 불투명

위기는 이것만이 아니다. 후쿠시마 1발을 운영해온 도쿄전력은 얼만 전까지만 해도 아시아 최고의 원전 회사였다(지금은 한국수력원자력이 아시아 최고다). 하지만 쓰나미 사고 이후 도쿄전력은 막대한 보상금 탓에 파산 위기에 처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사고가 일어나자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1발 반경 30km 안에 사는 사람들을 소개시켰다. 반경 30km 이내는 ‘경계구역’으로 설정해 일반인 출입을 막았다. 경계구역 안에 있던 가축은 죽음을 맞았고 농산물은 수확을 금지시켰다. 생업을 잃은 주민은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낼 수밖에 없다. 일본 정부는 방사선 수치가 자연방사선 수준으로 떨어질 때까지 경계구역 통제를 계속할 것이니 손해배상 금액은 시간이 갈수록 눈더미처럼 커질 것이 빤하다.

일본은 66년의 시차를 두고 원자력과 찐한 만남을 했다. 1945년 8월 일본은 2발의 원자폭탄을 맞은 뒤 항복했고, 2011년 3월에는 후쿠시마에서 4개의 원전이 폭발하는 초대형 사고를 당했다. 도쿄도 부지사로 활동하는 작가 이노세 나오키(猪瀨直樹) 씨는 원폭 투하 이후를 ‘전후(戰後)시대’, 원전 사고 이후를 ‘재후(災後)시대’로 명명했다. 목하 일본은 재후시대를 풀어가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다.

원자력 때문에 나라 운명이 두 번이나 바뀌었지만, 일본은 원자력을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는 듯하다.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일본 원자력계가 재난 대비에 소홀했다는 점, 그리고 엄청난 사고에도 원전을 계속 가져가겠다는 일본 조야의 의지는 원전 의존율이 높은 한국에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도쿄=이정훈 전문기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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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언론 인터뷰…“도쿄전력 ‘철수’ 요청 거절”

“사고 수습을 포기했다면, (1986년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난)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사고의 몇 배, 몇 십배나 되는 방사능 물질이 유출됐을 수도 있다.”

간 나오토(사진) 전 일본 총리가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사고 수습 과정에서 긴박했던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다. 간 총리는 도쿄전력 쪽이 3월15일 새벽 3시 경제산업상을 통해 원전에서 직원들을 모두 철수하게 해달라고 요청해온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간 총리는 당시 이를 거부하고 시미즈 마사타카 도쿄전력 사장을 불러 합동사고대책본부를 꾸리기로 합의했다. 그 뒤 도쿄전력 본사로 직접 찾아가 “철수란 있을 수 없다”며 간부들을 질책한 바 있다.

간 전 총리는 5일 <도쿄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그때 원전에서 직원들이 모두 철수했다면 지금 도쿄는 아무도 살 수 없게 됐을 지 모른다”고 말했다.

후쿠시마에는 1, 2원전을 합해 10기의 원자로가 있고, 11개의 수조에 사용후 핵연료가 저장돼 있는 등 엄청난 양의 핵물질이 있었던 까닭이다.

그는 같은 날 <아사히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시뮬레이션을 통해 여러 가능성을 조사했다. 피난범위가 원전 반경 300㎞로 확대될 경우 (수도권인) 간토지방 전체가 포함되고, 3000만명이 피난해야 했다”며 “일본이 한 나라로 설 수 없게 될 상황이었다”고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간 전 총리는 하마오카 원전의 운전을 모두 중단시킨 데 대해서는 “지진·해일로 원전사고가 일어나게 되면 도쿄와 오사카 사이가 차단되어 신칸센도 도메이고속도로도 모두 끊기게 될 것으로 우려했다”고 설명했다. 겐카이 원전 재운전 결정 직전 모든 원전에 대해 ‘스트레스테스트’를 거치게 하여 재운전을 무산시킨 데 대해서는 “경제산업성이 원자력안전보안원을 내세워 겐카이 원전을 원전 재운전의 돌파구로 삼으려고 했는데, 그러면 국민이 납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간 전 총리는 민주당의 에너지 정책을 ‘탈원전의존’으로 바꾸는 데 누구보다 적극적이었다. 적어도 이 부분에서는 여론의 강력한 지지를 얻었다. 그는 “나라의 절반에 사람이 살 수 없게 되는 사고라면, 그것이 100년에 단 한번 일어난다고 해도 그런 위험을 지고 갈 수는 없다”고 말했다.

도쿄/정남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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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한국인 4천500명 감소

(도쿄=연합뉴스) 김종현 특파원 = 후쿠시마(福島) 제1원자력발전소 사고로 피난을 한 주민이 1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9일 마이니치신문 등 현지언론에 따르면 지난 3월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이후 원전 주변 12개 시초손(市町村 : 한국의 시읍면에 해당)에서 피폭을 피해 피난하거나 거주지를 옮긴 주민은 8월 말 현재 10만1천931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집이 후쿠시마 주변의 경계구역이나 계획적피난구역에 있어 강제 피난한 8만5천명에 비해 많다. 경계구역이나 계획적피난구역외 지역에서도 자발적인 피난민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들 피난자 가운데 후쿠시마현 밖으로 피난한 사람은 5만5천793명에 달했다. 자녀들의 피폭을 우려해 어린 아이를 둔 부모나 임산부가 대거 후쿠시마현 밖으로 거주지를 옮겼기 때문이다.

사고 원전의 피해 수습이 장기화하고 원전 주변이 방사성 물질에 오염돼 죽음의 땅이 되면서 농업과 기업의 기반이 무너지자 일자리를 찾아 다른 곳으로 생활터전을 옮기는 사람들도 속출하고 있다.

주민들의 엑서더스가 일어나면서 후쿠시마현의 인구는 7월 1일 현재 199만7천400명으로 33년만에 200만명을 밑돌았다.

후쿠시마현 외에도 미야기(宮城)현과 이와테(岩手)현에서도 현외 이주자가 속출하면서 이들 도호쿠(東北) 3개현의 전체 현외 피난자는 8만3천명이었다.

한편 수도인 도쿄도에서 7월과 8월 인구가 연속 감소했다. 2개월간 감소인구는 6천400명이었다. 전력난과 방사성 물질 오염을 우려한 기업들이 일부 오사카(大阪) 등 남서부로 이전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도쿄도의 외국인 등록인구는 동일본대지진 이후 1만명이 줄었다. 외국인 가운데서는 한국인이 4천500명 감소해 가장 많았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결정적이었다.

kimj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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